우리에게 남겨진 숙제

2008/10/12 03:06
개별의 사람들이 스스로 남긴 숙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처하며 살고 있으면서도, 그 지위를 이용하여 주위의 있는 다른 동물들을 부리고, 생태계를 함부로 조절하여 균형을 망가뜨린다. 스스로는 '지구(영어로는 Mother Earth)'를 소중히 여기면서, 이면으로는 삼림 파괴나, 수질 오염등의 자연파괴를 한다. 그러면서, 정작 열대 우림이 사라지면서 지구가 아파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구는 지적 능력을 가진 생명체가 아니다. 결국 자연 파괴등의 밸런스 파괴로 인하여 재난이 닥치는 것은 인간들과 지구상에 존재하는 죄 없는 생물들 뿐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한 일에 대해서 숙제를 남길지도 모른다. 그것이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우리는 우리의 일에 관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반성하고 항상 기억하고, 그래서 일생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직시하고, 느껴야 하는 것이다.

인간 관계에 의한 숙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들 칭한다. 관계를 맺는 가운데에서 지적 교류와 감성적인 교류를 함께한다. 단순히 교류라는 것이 개인만을 강조하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교류이다. 정보의 일방적인 전달 처럼, 자신만의 고집과 아집이 인간 관계를 흐트려놓는 것이 아닌지 경계해야만 하는 것이다. 인터넷은 이러한 피상적인 공간에서 인간 관계를 맺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는 피상적인 공간안이란 것이, 실제로 대면하지 않는 공간이라는 말과 동치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말과 감성을 문자화(텍스트) 했다는 점에서, 말투라는 것이 결국 실제로 대면해서 말하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에는 진심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어감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다.
인터넷 상에는 자신의 말을 기술 할 때도 하나 하나 점검해야 하는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느끼면서도,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피상적인 관계를 맺고 산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기에 그런 것일까.

사회 단체, 정치, 우리의 권리와 관련한 숙제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며, 결국 관계의 복잡성 때문에 사회가 형성될 수 있었다. 단순화 된 사회 공동체에서는, 의사 결정 수단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사회는 너무나 복잡한 유기체 같이 이루어져 있다. 결국 의사 결정, 전달 수단은 결국 정치적 대리인에 맏기게 되는데,,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당연히 행사하면서도, 항상 후회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임기 기간 내내, 결국 정책은 정당의 색깔, 정당간의 신경전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정작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는 것이 잘 없게 된다.
 우리의 권리는 단지 투표장에 가서 찍고 나와 '나 투표했어, 민주 시민으로서 난 내 권리를 다한거야' 라고 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터넷에서나 일상에서나, 우리는 항상 잘못을 저지르는 정치인에 대해 비판하고 혹은 비난도 하긴 하지만, 정작 비난과 비판을 받은 정치인은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정치인의 활동에 관해 블라인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나 정당의 목소리가 국민의 목소리보다 더 크다는 점이며, 입법부나 사법부나 행정부의 힘이 개별 국민이 가지고 있는 권리를 다 합쳐도 투표 때나 감사 때나 잠시 그들의 힘이 약해질 뿐, 그 시기가 지나면, 지금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권리로서는 한계를 느끼게 된다.
 과거 군부 독재 시절에서는 민주주의를 획득하기 위해 '현실 참여'를 했지만, 지금은 단지 권리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제대로 이행이나, 실현이 가능한 세상이라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단지 투표와 사람을 선출하기 위해서 민주주의를 바란 것이 아니다. 또한 대다수의 국민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행정부에게 쏟아지는 질타나 비판을 행정부가 제대로 인식하고 알아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눈 가리고 귀를 막는다고 해서 나중에 모르게 되는 것이 아닌 세상이 지금이다. 미래나, 후대의 기록에서 당신들의 오점들이 선명하게 남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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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집단 린치 - 현실에서의 집단 린치와 인터넷에서의 집단린치를 비교, 실제 사회에서의 비교

 집단 린치는 사회가 형성되고 집단이 형성되면서 자동으로 따라오는 폐혜중 하나이다. 아래 그림은 오하마에서의 집단 린치 후 화형을 하는 사진이다. 현실에서의 집단 린치는 곧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주류에서 벗어난 소외받은 사람들이나 기피하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처리, 제거하기 위한 하나의 대응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래 사진과 같이 잔혹한 파괴성과 인간성의 부재를 낳았다.

오하마에서의 집단 린치 후 화형 장면


 집단 린치는 비단 현실에서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형성되고 집단이 있는 어느 곳에서나 집단 린치는 존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져울 뿐이다. 가령 학교에서는 '왕따(Bullying)' 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져 불릴 뿐이다.
 하물며 인터넷이라는 공간도 작은 단위의 사회 집단들이 모여 만들어진 사회 집단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또한 집단 린치가 존재하게 된다.
 인터넷에서의 집단 린치를 가상 폭력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데, 다음 표와 같이 특징을 요약 할 수 있다.




 종류  현실 폭력
가상 폭력





피의자 대상  집단 내
불특정 다수





 영향 육체적 피해, 정신적 피해
심지어 과거에는 살인도 동반
 우울증, 자괴감 동반





 후유증 육체적, 정신적
정신적 피해



 위의 표에서 보실 수 있다시피, 현실에서의 집단 린치는 육체적 피해와 정신적 피해, 그리고 즉각적인 효력을 불러 일으키고, 전시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인터넷에서의 집단 린치는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피해자와 관련이 없는 불특정 다수가 피해자를 인신 공격함으로서, 피해자가 정신적인 피해를 입는 것을 말한다. 이 때 피해자는 우울증과 자괴감을 동반하는 정신 질환에 걸리기 쉬우며, 극복 하더라도 정신적 피해를 동반하므로, 집단에 의한 인간 살인이라고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과거의 심각한 집단 린치의 예로서 KKK를 들 수 있는데, 미국 사회 내에서 인종의 차별로 인해 무참히 살해된 흑인들은 집단 린치를 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KKK가 일으킨 오하이오 집단 린치에 대한 만평


 하지만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인종의 차이, 사회 구조상의 갈등이라고는 볼 수 없는 다른 문제이다. 바로 국민성에 잠재되어 있는, '실제로, 겉으로는 표현을 못하지만, 그 사람이 없으면 얼마든지 비난을 가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정의 내려보자면 '숨겨진 비난'이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인터넷의 익명성은 그들이 가진 '숨겨진 비난'에 대해 무한한 자유를 제공했다. 이들은 방종에 가까운 행동으로 '악플'이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까지 부각 되었다. 이러한 인터넷 집단 린치는 유명인에서 부터 소외 계층까지, 다방면으로, 그것이 강하고, 이슈가 될 수록, 특히 가십거리에 벌 떼같이 달려들어 당사자를 물어 뜯는 경향이 있다.

국회와 정부가 가지고 있는 오류에 대하여 - 실명제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국회와 정부는 요즘에 상황에 대하여 더 넓은 범위에서 실명제를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이는 근본적인 오류 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국민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든 '실명제로 어떻게 국민을 통제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 할 수 있겠지만, 주민 등록법이 제정 되었을 때, 그 때 또한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겉으로는 '조선의 호패법의 우수한 장점을 이어받아~'라고 감언이설을 하면서, 주민 등록법을 통해 국민을 관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실명제는 인터넷의 고유 속성인 '익명성'을 제거함으로서, 현실에서의 구속을 인터넷에서 까지 그대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또한 표현의 자유는 구속에서 나올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로 중국의 웹 상황을 볼 수 있는데, 反정치 이념을 가지고 있는 네티즌을 수감시키는가 하면, 인터넷 통제를 통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집단 린치는 익명성에서 나오기는 하지만, 기초적인 시민 교육의 부재로도 나타난다. 실제적으로 도덕이나 윤리 교과서에서는 인터넷 윤리를 단순히 '~이러면 안됩니다.'라는 가벼운 문구로 수박 겉핥기 식으로 넘어가는 경향이 적지 않아 있는데, 이것은 문제이다. 실제적인 예를 들면서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실명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큰 집단에서 작은 집단을 자율적으로 통솔, 혹은 지도를 할 수 없냐는 것인데, 큰 집단의 사람들이 작은 집단인 KKK를 관리, 근절해서 민주적인 환경을 만들어낸 미국의 예를 볼 수 있듯이, 자체 근절을 통한 인터넷 집단 린치를 근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또한 실명제를 통한 통제는 말 그대로 민주적이라고도 볼 수 없다. 통제는 민주적인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니며, 어느 누군가의 막강한 권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Big Brother'를 양산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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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인격체, 그리고 블로거

2008/07/0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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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라는 가상현실에서 까지 현실의 사상, 인격체를 논한다는 것의 문제

 20세기 이후, 광통신망의 빠른 보급으로 사람들은 더욱 쉽게 인터넷을 접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논할 수 있는 광범위한 장이 되었다. 하지만 빠른 보급과 익명성은 가상현실의 본위를 훼손하기 시작했다. 욕설과 비방은 기본이고, 또한 사회 이슈로 부각되어 시끄럽게 한 '악플'까지. 정작 현실에서는 가면을 쓴 것 같은 자신들의 인격들이 인터넷이라는 장벽없는 세상에서는 또 다른 인격체로 만나게 된다.
 또한 또 다른 인격체가 만들어 놓은 사회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조차 자신의 다른 인격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다. 그것은 곧 자기가 만들어 놓은 하나의 이미지(image)인 것이다.
 즉 블로거 자신 조차도 결국 인간이 만든 하나의 인격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이 또 다른 자아를 넘어서는 개념으로서, 상황에 따라 자아가 변할 수 있는 자아 즉 'I-ego(아이-에고)'라고 칭할려고 한다. 'Interaction-Ego'의 약자로서, 상황과 자신의 선택에 따라 새로 생성되는 자아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에 있어서 I-ego는 본래의 자아의 장벽을 없애고, 새로운 자아를 탄생 시켜줄 수 있는 존재이다. 곧 I-ego는 상황적 변인이 존재한다. 장벽이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따라 지금 우리가 현실적인 자아와 인터넷에 있어서의 자아를 독립적으로 분리시켜준다.
 결국 언론인이 블로거가 된다는 것은 I-ego에 의해 또 다른 자아를 인터넷 세상에 생성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곧 기자라는 현실 대신, 블로거라는 객체로 돌아가게 된다. 물론 사람들은 기자라는 그 본위 자체에 사상이나 생각을 버리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I-ego 자체는 상황에 의해 생성된다. 즉 본인이 선택함에 있어 자아의 성격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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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현실의 자아는 성장과정, 사회의 성격에 따라, 그 본위에 관계 없이 생성된 존재이다. 결국 가상 인격체를 실제 인격체랑 완벽히 연관지어 판단한다는 것은 오류가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상 인격체의 인격을 결정하는 것은 I-ego의 역할이다. 결국은 가상 현실의 인격의 사상과 판단은 전적으로 현실 자아에서의 사상과 판단을 그대로 적용 시키기에는 무리인 것이다. 왜냐하면 가상 현실이라는 자아와 현실이라는 자아라는 것은 I-ego가 만들어낸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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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는 과연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

 창조적인 자신의 적성을 표출하기 위해, 자신의 뜻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표출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저작권자를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저작권자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정보의 공유와 생산이 이루어지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는 수 많은 자료들이 공유되어 가고 있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유통되는 이러한 불순한 구조에서는 저작권자의 창작 의지는 저해될 것이 자명하다. 과연 우리는 계속 저작권자의 밥줄을 끊게 만드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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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 침해 유형을 보면 음악이나, 영상 매체, 텍스트를 통한 방법으로 저작권자들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만약 막대한 규제를 해버리게 된다면, 국내 인터넷 사용자들의 대부분을 고소해버려야 할 판이 되어버릴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Mp3 파일을 P2P에서 다운 받아 본 경험이나, 게임을 받아 보았을 테니 말이다.
 실제로 저작권자가 해를 입는 부분은 수입의 문제와 권익 침해라는 점에서, 국내의 저작권 침해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과연 저작권자에게 모든 권리를 줘서, 더 양질의 정보가 공급되면 문제가 없지만, 과연 소비자들의 소비가 활성화 될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국민이나 기업들은 맨 땅에 머리 박기로 저작권자들에게 당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저작권법을 몇 번의 실험 없이, 그리고 국민의 의견 수렴(그것도 다원화 된 표본집단에서)을 하지 않게 된다면, 늘 받기만 했던 대다수의 국민들은 피해를 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작권법을 숙지 못한 상태에서, 음악 앨범 하나를 출근길에 잠시 듣기 위해 다운을 받아 나가려고 하는데, 경찰들이 찾아와 자신을 잡아가게 된다면? 과연 정보의 정당한 요금을 주어야 한다는 그러한 방법이 과연 창작물을 보고 난 후 제작하는 2차 제작물의 양과 질을 늘려줄 것인가? 그리고 정보의 올바른 보급이 될 것인가? 무자비한 정보 보급의 차단의 장이 되어버릴 것인가?
 또한 유저가 직접 올리는 스트리밍 사이트 같은 경우, 하루 수 많은 정보의 물결에서 제대로 필터링을 할 수 있을까? 보통 제목으로 검사하는 형국에서, 만약 제목을 달리하여 불법 동영상이 유포 된다면, 그곳의 관리자들은 일일이 동영상을 다 보고 검증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인력낭비 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기업에게 맨 땅에 헤딩하라는 뜻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기업은 약관을 통해 사용자들의 그러한 불법적인 행동에서 책임이 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업의 보호 없는 개인은, 저작권자들에게 많은 책임을 떠 안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정부와 저작권자들은 각설하고 사용자들에게 무조건적인 정보에 대한 정당한 지불을 요구해야 할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지불 방법과, 어느 정도 선의 저작권 허용 여부(2차 저작물을 만들기 위해 사용할 정도의 저작권 ex. 블로그 포스팅에 사진을 사용하기, 음악 저널을 위한 앨범의 곡 일부분을 첨부하기)) 정도는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정보의 효율적인 보급이냐, 아니면 정보의 무차별적인 차단이냐, 앞으로 정책의 변화에 블로고스피어는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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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들의 등장, 사용자는 갈팡질팡.

2007/01/06 11:59
신조어에 대한 의미를 몰라 당황한 경험이 있으십니까?

 단순히 이제 Web 2.0은 웹을 넘어, 일상생활 속에 침투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반영하는 것은 바로 '신조어'들이다.
 UGC(UCC라고 불리우는), Blog, Blogosphere, Mash-up, Ajax, CCL등, 이러한 단어들을 우리 주위에서, 특히 광고나, 기사 그리고 블로그계라고 불리우는 블로고스피어에서 까지. 일상생활에서 이제 웹이 미치는 영향은 실로 높아져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단순히 이러한 단어를 몰라, 여러 블로거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조어의 의미를 몰라 네이버의 '지식 in'이나 여러 사이트에서는 이러한 신조어의 의미를 묻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이러한 신조어들의 확산은 사용자를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사용자가, 그런 단어의 의미를 알면 뭐하는가, 그냥 사용하면 되는 것이지. 하고 덤벼든다면, 예로들어 'CCL'의 단어를 몰랐다고 치면, '불펌'을 해 가는 현상이 만연할 것이고, UGC를 단순히 동영상 매체로만 생각할 것이고, 단순히 '능동적'인 웹 생활이 아닌, '수동적'인 웹 생활을 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사용자들은 웹 2.0과는 별로 맞지가 않지요. '참여와 개방'이니까요. :)

신조어를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RSS나 XML같은 단어들은 아직 사용자들에게 꼭 알아야 한다는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속의 원리 쯤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인터넷을 받아들이는 것 보다는 사용자가 능동적으로 단어의 본질을 읽고, 이러한 웹 2.0의 단어와 친해질 필요성이 생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단순히 '수동적'인 웹 생활을 탈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웹 2.0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일반 사용자와 IT 관계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공유와 참여 정신) 그리고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단어들에 친숙해 져야 한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저의 논리적 비약은 있을 수 있습니다. 댓글로 이러한 신조어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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